세계 각국의 연구쇄빙선 경쟁, 한국은?
한국이 보유한 7,500톤급 쇄빙연구선 ‘아라온(ARAON)호’. 1년 중 70% 이상을 남극에서 지내 북극 연구에는 연간 15일 밖에 활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 극지연구소 제공 -
주인 없는 천연자원의 보고, ‘21세기 보물섬’ 북극을 차지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자원의 보고이자 생태연구의 미개척지인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새로운 항로와 자원 지대가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21세기 중반 무렵 북극해에서 빙산이 완전히 사라져 전 세계 미개발 원유의 25%, 천연가스의 45% 정도가 채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극 항로는 기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것보다 여정이 10여일 단축될 것으로 예측된다.
북극의 ‘보물’은 예상보다 빨리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북극의 빙산은 지구상 다른 지역보다 약 두 배 빠르게 녹고 있다. 북극해 바닥에는 900억배럴의 석유와 47조㎥의 천연가스가 있는 것으로 추정됨. 미국 지질자원조사국(USGS)은 북극에 ‘불타는 얼음’이라 불리는 미래 에너지자원 메탄하이드레이트도 막대할 뿐 아니라 망간·니켈·금·구리 같은 금속광물도 엄청난 양이 매장돼 있다고 밝혔다. 빙하가 녹으면 상업적 조업과 관광 기회도 확대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북극의 지정학적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북극 인접국뿐만 아니라 주요국들이 북극 선점 경쟁에 나서 국제평화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따라서 북극해 연구를 놓고 세계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천연자원 수송을 위한 북극해 항로 개발, 북극의 급격한 기후변화 연구, ‘불타는 얼음’ 메탄하이드레이트 등 자원 탐사를 위해서다. 연구 성과는 북극해 연안국과의 협력관계 구축을 위한 과학 외교에 활용된다. 북극해를 연구하려면 무엇보다도 해빙(海氷)을 깨고 항해할 수 있는 쇄빙연구선이 필요하다. 독일, 일본, 영국, 중국 등이 1만 톤급 이상의 새로운 연구용 쇄빙선을 2020년경 도입할 예정이다.
쇄빙선 최강국 러시아는 2026년까지 통합조선공사(USC) 계열의 발틱공장에서 핵추진 쇄빙선 5척을 추가로 건조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총 36척의 쇄빙선 함대를 운용 중이며 이 가운데 16척이 북극 전용이다. 원자력 추진기관을 장착한 세계 최대 2만5,000톤급 쇄빙선 ‘NC50’도 갖고 있다.
● 3m 두께 얼음도 깨부수는 獨 vs 수중로봇·드론 탑재 英 쇄빙선
2020년 출항을 목표로 독일이 건조 중인 ‘폴라르슈테른2’가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다. 2만7000톤급이며 최대 130명까지 승선 가능한 선박으로 연구용 쇄빙선 중 가장 규모가 크다. 3m 이상의 두꺼운 얼음을 깰 수 있다. ‘극지의 별’이란 뜻의 폴라르슈테른2는 1982년부터 북극해와 남극해를 연구해온 폴라르슈테른을 대체할 후속 모델이다. 북극해 얼음층은 보통 2∼5m로 남극해보다 2배 이상 두껍다.
1만2,000톤급의 폴라르슈테른은 1.5m 두께의 얼음까지 깰 수 있지만 얼음이 더 두꺼운 고위도 지역에 접근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강성호 극지연구소 극지해양과학연구부장은 “북극해 연안에서 멀리 벗어나려면 쇄빙선이 2m 이상 두께의 얼음층을 안전하게 깰 수 있어야 한다”며 “극지 중에서도 고위도 쪽은 아직까지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미개척지”라고 말했다.
영국은 2019년 취항을 목표로 2m 두께의 얼음을 깰 수 있는 1만5000톹급 연구용 쇄빙선 ‘D. 애튼버러경 호’를 건조하고 있다. 선박에 2개의 헬리콥터 발착장, 20개의 실험실, 해양조사 장비, 크레인 등을 갖추게 된다. 최대 90명이 승선할 수 있고 항해 중 잠수정이나 수중로봇, 드론 등을 내보낼 수도 있다. 드론이나 헬리콥터는 극지 해양에서 배출되는 에어로졸을 관측한다. 한번에 60일까지 연속 항해가 가능하다.
영국의 극지 연구를 총괄하는 자연환경연구회(Nerc)의 이사장 덩컨 윙햄, 영국 런던유니버시티칼리지(UCL) 기후물리학과 교수는 “북극은 최근 100년 동안 지구에서 기온이 가장 많이 상승한 지역이고, 지구 전체의 해류 흐름과 기후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집중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일이 건조 중인 2만7,000톤급 연구용 쇄빙선 ‘폴라르슈테른 2’(위)는 3m 이상 두께의 얼음층을 깰 수 있다. 영국이 2019년 취항을 목표로 건조 중인 ‘D. 애튼버러경 호’(아래)는 2m 두께까지 얼음을 깰 수 있다.
● 중국 건조 첫 쇄빙연구선 2019년 취항…日, 북극 관측용 쇄빙선 건조 예정
중국도 2019년 취항을 목표로 지난해 12월부터 중국 상하이에서 최대 90명이 승선할 수 있는 1만3,990톤급 연구용 쇄빙선을 건조하고 있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쇄빙선을 만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5m 두께의 얼음까지 깰 수 있으며 배의 앞부분뿐만 아니라 뒷부분도 얼음을 깨고 나갈 수 있다. 이 배는 중국 유일의 연구용 쇄빙선인 ‘쉐룽(雪龍)’과 팀을 이뤄 극지 연구에 활용될 예정이다.
일본은 남극용 쇄빙선 ‘시라세’가 있다. 그렇지만 내년부터 약 300억 엔(약 3090억 원)을 투자해 연중 항해가 가능한 1만 톤급 북극 관측용 쇄빙선을 새로 건조할 계획이다. 이 배는 1.5m 두께의 얼음을 깰 수 있고, 2021∼2022년경 취항할 예정이다.
● 한국 건조 첫 쇄빙연구선 2009년 취항…해수부, 북극 관측용 쇄빙선 건조 예정
국내에서는 1.5∼2m의 쇄빙 능력을 보유한 1만2,000톤급 제2쇄빙선 건조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7,500톤급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있지만 1m 이하 두께의 얼음만 깰 수 있고 70% 이상을 남극에서 지낸다. 북극에서는 15일 정도만 연구에 활용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2009년 국내 첫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를 띄워 본격적으로 항로 개척, 자원 개발, 환경 탐사 등 극지연구에 착수했으나 아라온호가 전체 연구 수요의 60% 정도만 소화할 정도여서 제2쇄빙연구선 건조가 필요하다고 해수부는 설명했다.
해수부는 총 톤수 1만2천톤, 승선 인원 120명(승무원 30명·연구원 90명) 규모의 제2쇄빙연구선을 건조해 북극 연구수요를 맡기고, 기존의 아라온호는 남극연구를 전담토록 할 계획이다.
해수부는 북극 연구 수요 증가와 북극 항로 이용 등 산업계 수요를 고려해 제2쇄빙연구선을 아라온호(톤수 7천487톤·승선인원 85명)보다 큰 규모로 건조할 예정이다.
제2쇄빙연구선은 아라온호보다 쇄빙능력도 2배 강화된다. 현재 아라온호는 1m 두께 평탄빙을 3노트로 연속 쇄빙 가능한 쇄빙능력(Polar 10)을 갖췄으나 제2쇄빙연구선은 2m 두께 평탄빙을 3노트로 연속 쇄빙하는 능력(Polar 20)을 장착할 예정이다.
시추기능 강화를 위해 선체 중앙부에 문풀(Moon Pool)과 최첨단 지구물리 탐사장비 장착도 추진한다.
해수부는 제2쇄빙선을 본격적으로 운영하면 북극연구 항해 일수가 기존 27일보다 5배 이상 길어진 140여일로 늘어난다고 밝혔다.
또 쇄빙능력 한계로 그동안 탐사하지 못한 지역을 탐사할 수 있어 우리나라 과학영토를 기존 연구 영역보다 10배 이상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편 한국은 이달 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고위급 북극협력대화’에서 일본, 중국과 함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에 따르면 3국은 2020년 ‘국제 공동 환북극 해양관측 프로젝트’를 비롯해 구체적인 북극 연구 분야 협력사업을 발굴하기로 했다.